처음 시작은 ...
19세기 초 런던과 스코틀랜드에서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개신교가 해야 할 일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그 모임에 참석한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진지하게 귀 기울였고 유대인들도 복음을 듣고 구원받아야 한다는 결론을 맺었다.
1842년 11월 7일 런던의 리젠트 스퀘어에 있는 내셔널 스콧치 교회(National Scotch Church)에서 영국 유대인 복음 전도 협회(British Society for the Propagation of the Gospel among the Jews)를 구성하기 위한 모임이 열렸다. 스코틀랜드의 유명한 설교자인 로버트 머레이 맥체인(Robert Murray M'Cheyne)을 포함한 참석자들은 스코틀랜드 국교회에서 행하는 유대인 선교와 협력하기로 동의했다.
이 단체는 후에 국제 유대인 전도 협회(International Society for the Evangelisation of the Jews)로 변경되었다.또한 1879년에 런던의 바비칸 지역에서는 유대인 크리스천에 의해 설립된 유대인 복음 전도 단체가 사역을 시작했는데, 1891년에 바비칸 유대인 선교회(Barbican Mission to the Jews)로 바뀌었다.
두 단체는 유럽, 특히 많은 유대인이 복음을 받아들인 폴란드 동부지역에서 빠르게 확장되었으며 이들의 사역은 중동, 유고슬라비아, 체코슬로바키아에서도 개척되었다.
그로부터 50년이 채 되기도 전에 부다페스트에서 유대인 선교를 하던 윌리암 윈게이트(William Wingate)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유대인 크리스천은 어느 곳에나 있다. 유대 사회의 모든 부류, 즉 대학교수, 변호사, 의료인, 문학가, 음악가, 예술가, 상인, 기술자, 가난하거나 부유한 자들 모두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그들의 죄를 고백한다. 그들은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다른 모든 신자와 함께 “우리는 예수님의 속죄 피로 인해 구원받고 죄 용서함을 받았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흑암 중에 전해진 빛
나치 정권하에서 600만 명의 유대인을 끔찍하게 몰살시킨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유럽에서의 사역은 중단되었다. 그러나 데이빗슨 (I.E. Davidson) 목사의 노력으로 많은 유대인 어린이들이 죽음으로부터 구조되어 부모의 허락하에 영국에서 보호되었다. (위 사진 참조) 그들 중 많은 사람이 구주를 믿게 되었고 몇몇은 목회자와 선교사로 섬겼다. 전쟁으로 인해 유럽에서 중지된 유대인 선교 사역은 다른 나라들로 방향을 바꾸어 다시 시작되었다.
유대인의 대규모 이주와 홀로코스트를 통해 수백만 명의 유대인이 살해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두 단체의 사역은 전쟁 후에도 계속되었다. 유대인이 예수님의 복음을 들어야 한다는 확신은 계속되는 사역의 원동력이 되었고 오늘날 우리에게도 계속해서 동기를 부여하고 있다.
1976년에 두 단체는 마침내 Christian Witness to Israel로 합병되었다. 그리고 역사의 기초위에 세워진 우리의 사역은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헝가리, 미국, 호주, 뉴질랜드, 이스라엘, 홍콩 그리고 한국에서 계속되어왔다.